황혼 /이육사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 드리노리
바다의 흰 갈매기 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인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 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우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탄 행상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 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에 또 저 푸른 켜텐을 겉게 하겠지
황혼아 내일도 또 저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황혼/이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