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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달밤 /김소월

by 물망초원 2015. 6. 20.

여름의 달밤 /김소월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 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 밤이여

그지없이 거룩한 하늘로서는

젊음의 붉은 이슬 젖어 내려라

 

행복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 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복받았어라

 

벋어 벋어 오르는 가시 덩굴도

희;미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기름 같은 연기에 멱감을 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들어라

 

우긋한 풀대드ㅏㄹ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 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은(銀) 슷듯이 오는 바람은

눅자추는 향기를 두고 가는데

인가들은 잠들어 고요하여라

 

하루종일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들도 편안히 잠들었어라

영 기슭의 어둑한 그늘 속에선

쇠스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의 우는 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더욱 잦을 때

나락 밭 가운데의 우물가에는

농녀(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의 울음이 넘는 곡조요

아아 기쁨 아늑한 여름 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은 목숨의

정열에 목맺히는 우리 청춘은

서느러운 여름 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에서 지나는 여름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의 이 세상에 다시 있으랴

 

조그만 괴로움도 내어 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 기울이며

흰 달의 금물걸에 노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하여라 좋은 한때를

흘러 가는 목숨을 많은 행복을

여름의 어스레한 달밤 속에서

꿈 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라

-김소월님의 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