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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윤동주

by 물망초원 2024. 4. 21.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 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온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별 헤는 밤/윤동주 -